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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앤유] 보이지 않는 디테일까지 그려내다! 단원 김홍도의 서당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조선 시대 최고 풍속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그의 작품인 ‘서당’, ‘기와이기’, ‘씨름’은
모두 뛰어난 심리묘사와 연출력이 돋보이는데요~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숨은 이야기까지 전달하는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살펴봤습니다.

※ 아랫글은 삼성앤유에 소개된 콘텐츠를 블로그용으로 수정한 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까지 살피다

글 정민영 미술평론가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합니다. 얼굴보다 마음씨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두 외형보다 본질에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화폭 너머 숨은 이야기까지 전달하는 그림은 그래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보이지 않는 디테일까지 그려낸 단원 김홍도는 화가 이전에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김홍도 서당
김홍도, <서당>, 종이에 수묵담채, 27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삽화가 있는가 하면 작품성 충만한 걸작은 그 자체로 완벽한 데다 마음을 유혹하는 비밀스러운 요소까지 함축하고 있다. 조선 시대 최고 풍속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1745~1806년 이후)의 걸작 <서당>은 보이는 것 너머까지 챙겨야만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풍속화다. 그림의 내용은 단순하다. 꾸중을 들었는지 우는 아이와 난감해하는 훈장, 이를 지켜보며 키득거리는 학동들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각 인물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발연기’하는 인물이 없다. 실제 서당을 보는 듯 실감 난다. 모두 비가시적 부분까지 신경 쓴 단원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다. 스위스의 정밀 시계처럼 1mm의 오차도 없을 만큼 조형미가 유기적으로 짜여 있다.

보이지 않은 디테일의 힘


서양미술에서는 원근법이 중요하다. 가까이 있는 사물을 크게, 멀리 있는 사물을 작게 그리는 원근법은 서양미술이 발명한 최고의 ‘원천 자원’이다. 그런데 <서당>에서 원근법적 시각은 무용지물이 된다. 원근법에 따르면 맨 앞쪽의 어린 학동이 크고 뒤쪽의 훈장이 작아야 하는데, 그림 속 인물들은 크기가 반대다. 역원근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옛 그림을 원근법의 틀로 봐서는 곤란하다. 원근법은 서양의 조형 비법인 까닭이다. 사람들이 원근법에 익숙하다 보니 우리 옛 그림의 특이한 표현 방식을 편의상 역원근법이라고 한다. 역원근법은 원근법과는 반대로 뒤쪽 인물은 크게, 앞쪽 인물은 작게 그린다. <서당>을 보면 뒤쪽 훈장이 크고 맨 앞에 앉은 학동이 제일 작다.

김홍도
김홍도, <기와이기>, 종이에 수묵담채, 27 X 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왜 그렇게 그렸을까. 단원이 역원근법을 알아서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단원은 당시의 표현 방식을 따르되 소재를 마음으로 숙성시켰을 뿐이다. 현실에서 어른은 크고 아이는 작다. 조형적으로 인물의 크기를 변형하기보다 세상 이치를 그대로 그림에 담았다.

단원의 뛰어난 연출력은 학동들 배치에서도 확인된다. 학동들은 같은 공간에서 학습하지만 신분상 차이가 있다. 단원은 이를 분리 배치로 해결한다. 오른쪽 학동은 양반 자제고 왼쪽 학동은 상민 자제다. 옷차림이 다르다. 양반 자제의 옷은 바닥에 늘어질 만큼 길다. 반면 상민 자제는 짧은 저고리를 입었다. 옷차림이 곧 신분이다. 단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중인 출신인 단원의 애정은 상민 쪽에 쏠린다. 우는 아이와 상민인 학동들이 화면 중간 지점에 모여 있다. 명당자리다. 시선이 쏠린다. 상민 학동들은 표정도 더 진지하고 똘똘하다. 또 뭔가를 알려주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상민 자제들의 우애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양반 자제들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기만 한다.

울보 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훈장의 난처한 표정은 혹시 단원의 심경이 아닐까. 훈장답게 시종일관 근엄한 표정을 짓기보다 아이 처지에 감정이입을 해 곤혹스러워하는 데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거친 수염에 얼굴은 우락부락 호랑이 선생님인데 마음은 여린 모양이다. 훈장에게 배우는 것이 글공부만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김홍도, <씨름>, 종이에 수묵담채, 39.7 X 26.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울보 아이의 겁먹은 심리 표현도 일품이다. 우는 아이의 상황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자. 아이의 손동작을 보면 훈장에게 매를 맞았기 때문에 우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는 왼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오른손으로 바지를 걷으려는 듯 대님을 풀고 있다. 매를 맞기 직전 상황이다. 훈장에게 회초리를 맞을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다. 그래서 눈물을 보인다.

학동들은 그 꼴이 우스워 키득대기 시작한다. 만약 아이가 매를 맞은 후였다면 학동들은 훈장이 무서워 감히 웃지 못했을 것이다. 단원은 매를 들게 하지 않고도 긴장된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훈장의 서탁(書卓) 옆에 회초리만 놔뒀다.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구름을 그려서 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회초리를 들지 않고도 무서운 상황을 충분히 연출한 것이다. 서민의 눈높이에서 서민과 호흡하는 단원은 빼어난 스토리텔러(Storyteller)였다.

걸작은 보이는 것 너머에 살아 숨쉬는
플러스알파 요소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플러스알파의 존재를 만드는
‘숨은 힘’은 화가의 마음이다.
마음 깊이에 따라 감동의 질감은 달라진다.

춤추는 학동


마음의 깊이가 빚는 감동의 깊이

이 그림에는 배경이 없다. 무(無)배경은 단원 풍속화의 한 특징이다. 배경이 있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 비해 단원의 일부 풍속화는 인물 위주다. <서당>은 실내 공간을 암시하는 어떠한 형태도 없다. 그래서 감상자의 시선이 인물들의 행위에 집중된다. 이런 시선 집중 효과는 그림자가 없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붕에 기와 이는 광경을 그린 <기와이기>, 씨름판 풍경을 담아낸 <씨름>도 그림자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군더더기가 일절 없다. 사실 우리 옛 그림은, 아니 동양화는 원래 그림자를 그리지 않는다. 그림자가 없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옛 그림은 마음으로 보는 그림이다. 배경과 그림자의 부재는 주제에 집중하는 효과를 준다. 걸작은 보이는 것 너머에 살아 숨 쉬는 플러스알파 요소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플러스알파의 존재를 만드는 ‘숨은 힘’은 화가의 마음이다.

마음 깊이에 따라 감동의 질감은 달라진다. 한없이 무미건조할 수도 있고 맛깔스러울 수도 있다. <서당>에는 단원이 가슴으로 숙성시킨 익살과 해학이 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서민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있다. 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단원의 조형적 겸손이 있다. <서당>은 우리 풍속화의 비밀을 담아낸 시대의 걸작이다.

명작 스캔들
김홍도 <자화상>의 비밀

김홍도, <자화상>, 종이에 수묵담채, 27.5 X 43cm,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자화상은 자신을 그린 초상화를 말한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외형 모사에만 그치지 않고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는 ‘전신사조(傳神寫照)’에 중점을 두었다. 단원 김홍도는 인물・산수・화조(花鳥)・도석(道釋)・풍속 등 다방면의 그림에 능했지만 정작 자화상은 전해진 작품이 없다. 다만 자화상으로 추정하는 그림은 있다. 그중에서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이 소장한 <자화상>과 개인이 소장한 <포의 풍류도(布衣風流圖)>가 유명하다. 만약 두 그림이 단원의 자화상이 맞다면 <자화상>의 주인공은 삼십 대 후반이고, <포의풍류도>의 주인공은 오십 대다.

김홍도, <포의풍류도>, 종이에 수묵담채, 27.9 X 37cm, 개인 소장

<자화상>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 주인공이 정좌하고 서탁에는 여러 가지 물품이 얹혀 있다. 인물만 그렸어도 될 텐데 왜 서탁과 물품을 함께 그렸을까.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는 조선 시대 후기에 성행한 중국 골동품에 대한 광적인 애호 풍조와 관련이 깊다. 조선 후기에는 중국과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청나라로부터 막대한 양의 골동품을 수입했다. 이 그림에도 서탁 위에 중국산 물품이 즐비하다. 서탁도 국산이 아니다. 명・청 시대에 유행한 고가 명품 가구였다.

<포의풍류도>에도 비파를 타는 주인공 옆에 비치된 물품 은 국산이 아니다. 진귀한 중국산 골동품이다. 당시 중국 에서 수입한 사치품과 골동품은 조선 후기에 새로운 회화 주제로 등장했고 이를 수집하는 광적인 수집가를 낳았다. 두 그림의 주인공은 중국에서 수입한 사치품으로 집 안을 장식하며 자신의 재력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다. 마치 오늘날 재력가들이 고가의 외국산 제품으로 주거 시설을 꾸미고 명품으로 자신의 외모를 치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들 그림은 일종의 과시욕에서 진귀한 물품을 들러리로 세운 것 같다. 단원이 서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에 그 역시 검소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당대 최고 화가답게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으로서 공적인 그림 제작 외에 개인적으로 주문받은 그림이 많아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이들 그림은 우리가 몰랐던 단원의 호사(豪奢)취미(趣味)와 과시욕을 은근슬쩍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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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제

    김홍도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는데, 여기 다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 http://blog.samsung.com 삼성이야기

      아주 시의적절할 때 소개해 드렸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