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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앤유] 강원도에는 마을 전체가 미술관인 곳이 있다?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강원도 양구 정림리는 박수근 화백의 고향으로 유명한데요.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 마을 곳곳에 그려져 있어
예술과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미술관 같은 마을!
강원도 양구 정림리로 함께 가볼까요?

※ 아래 글은 삼성앤유에 소개된 콘텐츠를 블로그용으로 수정한 글입니다.


예술, 착한 땅에 깃들다

글 박미경 / 사진 안홍범 / 일러스트 이누리
자료협조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양구군청

가난해도 고단해도 기품을 잃지 않는다. 사뿐사뿐 오가며 가만가만 품을 나눌 줄 알고, 씨억씨억 일하다가도 도란도란 정을 섞을 줄 안다. 양구에는 여태 그런 이들이 산다. 물처럼 순하고 산처럼 깊은, 오래전 우리가 알았던 그때 그 사람들이다. 박수근은 평범한 사람의 비범함을, 가난한 살림의 고귀함을, 고단한 삶 속의 여유로움을 눈 밝게 담아냈던 화가다. 그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인물들이 이 땅 곳곳에서 따뜻이 미소 짓는다.

같은 곳을 본다고 같은 것을 보는 건 아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눈에 담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땅으로 들어오는 고갯길에 터널이 뚫린 것은 고작 일 년 전. 오랜 세월 꼭꼭 숨어 있던 이곳에는 세상이란 술래가 훼손하지 못한 질박함이 오롯이 살아있다. 보는 눈이 아무리 달라도 이런 곳에선 같은 것을 볼 확률이 매우 높다.


마을과 미술관의 아름다운 동행

박수근이 살아있다면 박수깨나 쳐줬을 것 같다. 마을의 행복을 수군수군 다 함께 찾아나가니 여행자의 가슴이 두근두근 덩달아 뛴다. 박수근이 나고 자란 정림리는 동네 전체가 미술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 뒷산과 마을 앞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 그림을 그려간다. 머잖아 뒷산 나목에 연둣빛 새순이 곱게 피어오르면 뒤이어 앞들 논물 위로 흰 구름이 느리게 놀다갈 것이다.

낡은 벽에 그려진 벽화가 소박하고 정감 있다

낡은 벽에 그려진 벽화가 소박하고 정감 있다

마을이 온통 미술관처럼 여겨지는 것은 자연 때문만이 아니다. 이 마을의 낡은 벽은 소박한 벽화로 곱게 단장돼 있다.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양쪽 길 벽면엔 지역 예술가들이 그린 박수근의 작품이, 구멍가게 맞은편 새하얀 벽면엔 동네 어르신들이 그린 박수근의 그림이 눈부시게 걸려 있다.

손수 가방에 그림을 그린 어르신들 모두 이 마을의 화가다

손수 가방에 그림을 그린 어르신들 모두 이 마을의 화가다

옛날엔 마을이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었어. 돌담 너머론 흰봉산이라는 멋진 산이 있었는데 미군 비행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깎이고 말았지. 노루와 토끼가 뛰어다니던 그 산이 아직도 눈에 선해. 경치도 경치지만 정림리는 대대로 농악을 잘했던 동네야. 이런 마을이었기 때문에 박수근 같은 화가가 나온 것 같아

최문홍 할아버지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정림리가 배출한 화가는 박수근만이 아니다. 이 마을 어르신들은 지난겨울 정식으로 전시회를 가진 ‘진짜 화가’다. 천 가방에 붓으로 그린 그이들의 작품은 색감이 아주 뛰어나다.

박수근미술관에서 그의 꾸밈없 는삶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박수근미술관에서 그의 꾸밈없는 삶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박수근처럼, 자연이란 스승이 그들을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동네 어르신들을 화가로 만든 건 박수근미술관이다. 박수근 생가터에 자리한 이곳은 지역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수년 동안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왔다.

건립 10주년인 지난해는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해다. 이름 하여 ‘수근수근 마을 프로젝트’. 벽화 작업으로 시작된 마을 살리기 작업은 주민이 농작물을 직접 판매토록 하는 ‘수근수근 마을 장터’로, 미술관 창작 스튜디오 입주 작가들과 함께하는 ‘수근수근 음악회’로 이어졌다.

박수근미술관 내부

박수근미술관 내부

정림리 주민은 이제 미술관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장화발’로 달려 나와 손을 보탠다. 삶 속에 미술이 들어온 뒤로 행복의 마술이 펼쳐진 셈이다. 구멍가게 맞은편, 동네 사람들의 그림이 벽화로 전시된 공간은 일명 ‘수근수근 카페’로 불린다. 지역 예술가들이 양철 지붕 바로 밑 그늘을 작은 노천카페처럼 꾸며 주민 쉼터로 만들었다.

창틀 위 화분은 양철 지붕집 주인이 장에 가서 직접 사온 것이다. 아름다움을 타인과 공유하려는 마음. 그 마음이 곧 예술가의 마음이다. 정림리 구멍가게엔 간판이 없다. 올해는 그 가게에 예쁜 간판을 달아주는 것이 미술관의 계획이다. 마흔 살 가게에 어떤 이름을 지어줘야 할지, 주인할머니는 뒤늦게 그것이 고민이다.


그림을 닮은 동네, 그림을 닮은 사람들

수수한 차림으로 앉아 있는 박수근 동상은 생전의 그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화강암으로 된 미술관 돌담 아래서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슬며시 잡아보는 기쁨, 박수근 동상 옆에 털퍼덕 주저앉아 그와 같은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재미, 박수근 묘소에 이르는 산책로에서 온갖 새와 화음을 맞춰보는 즐거움…. 박수근미술관에서 해볼 수 있는 행복 체험이다.

박수근의 작품이 미술관 안에 있다면 박수근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미술관 밖에 있다. 미술관 입구에 사는 장수옥 할머니는 볕 맑은 어느 봄날 파와 상추와 시금치를 마당 텃밭에 파종했다. 머잖아 그것들이 자라면 할머니는 손수레에 옮겨 담고 닷새마다 장터로 향할 것이다. 할머니의 나이 올해로 아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다닐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편해졌지만, 할머니의 걸음은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다.

양구의 모든 풍경이 박수근의 작품처럼 아름답다

양구의 모든 풍경이 박수근의 작품처럼 아름답다

경로당 앞에서 만난 김봉자 할머니와 고진화 할머니에겐 무명 저고리에 고무신을 신고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던 소녀 시절이 있었다. 동무들과 놀 때조차 포대기로 동생을 업어야 했던, 아기가 자면 새참을 이고 들에 가거나 물동이를 이고 샘터로 가야 했던 나날. 시집을 가면 일은 더 늘어나서 틈틈이 맷돌질이나 절구질을 하고 짬짬이 빨래터로 나가 식구들의 옷을 빨아야 했다. 그 모든 일상이 박수근의 그림에 고스란하다. 이름 없이 살아온 여인들의 비루하고 볼품없는 하루가 그의 그림 속에선 꽃처럼 별처럼 환하다.

비누 대신 메밀짚을 시루에 태워 만든 잿물로 빨래를 했어. 힘은 좀 들었어도 박달나무로 만든 빨랫방망이를 두드리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했지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학교 문턱에도 갈 수 없었던 정림리의 일곱 할머니는 지난 1월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한글을 배운다. 교사는 인근 군부대에 복무 중인 군인들이다. 부대 사정으로 선생님들이 수업을 걸러도 학생들의 학구열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밥상을 차리다가도 드라마를 보다가도 할머니들의 글공부는 계속된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뒤로 세상이 다르게 보여. 얼마 전엔 두 며느리한테 난생처음 편지도 썼는 걸. 이제 어딜 가도 어깨가 펴져


내일은 정림리 여자 스무 명이 형제계를 하는 날이야. 한 달에 한 번씩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말 그대로 형제처럼 지내는 날이지. 벌써 40년 가까이 됐어. 처음엔 다들 새댁이었는데 죄다 이렇게 늙어버렸네

연분홍 치마를 봄바람에 휘날리며 읍내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갈 할머니들. 이 봄날은 가도 이분들의 봄날은 가지 않을 것 같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은 양구를 아름답게 빛내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은 양구를 아름답게 빛내는 또 하나의 풍경이다

곳곳에 감자며 옥수수를 심는 주민이 보인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일손을 보태거나 하다못해 말벗이라도 되어준다. 그래서 밭 주인이 대체 누구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박수근의 믿음에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향, 꿈이 있던 자리

이곳 양구초등학교에서 박수근은 그림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이곳 양구초등학교에서 박수근은 그림에 대한 꿈을 키웠다

양구 읍내에도 박수근의 흔적이 있다. 그 가운데 양구초등학교 (양구공립보통학교)는 그가 다닌 첫 학교이자 마지막 학교였다. 이곳에 재학 중이던 열두 살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 ‘꿈의 요람’이란 말이 이보다 적절할 순 없다. 박수근마을과 달리 박수근 모교엔 그의 그림 속 풍경이 남아 있지 않다. 삼삼오오 주저앉아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 모습은 이제 우리 땅의 풍경이 아니다. 아쉬움을 달래주는 건 재잘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들의 뒷모습이다.

쓸쓸하지만 모질고 당당한 박수근나무가 여전히 양구를 지키고 있다

쓸쓸하지만 모질고 당당한 박수근나무가 여전히 양구를 지키고 있다

작은 등에 꿈을 업은 아이가 저 안에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보통학교 시절 박수근이 즐겨 그리던 나무는 교육청 안 언덕바지에 있다. 양구는 봄이 늦다. 일명 ‘박수근나무’라 불리는 느릅나무는 4월 하순인데도 아직 새잎 한 장 걸치지 못했다. 그래서 더 반갑다. 박수근 그림 속 나무가 하나같이 나목(裸木)이기 때문이다. 한자리에 그대로 서서 거친 풍파를 맨몸으로 견뎌내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보잘것없는 생명들을 온몸으로 품어주는…. 저 나무가 꼭 그 사람 같아서 오래도록 그 곁을 서성인다.

박수근(1914~1965)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는 소박하고 평범한 서민의 생활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돌밭이나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케 하는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해 한국 미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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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kbs,com 이현재

    잘사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