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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20주년] 월드베스트를 향한 삼성의 노력 2편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의 시기를 맞게 되는데요.

반도체, 휴대폰, TV 등 IT 제품뿐만 아니라 조선, 초고층 빌딩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삼성의 제품에는 곳곳에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의 삼성 제품이 있기까지 과정을 Sam과 함께 알아볼까요?

삼성그룹 블로그는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시리즈 콘텐츠 ‘신경영 20주년, 또 다른 도전’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질 위주의 경영1호! 반도체

이건희 회장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합니다. 당시 한국반도체는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할 역량이 없었고, 삼성 또한 1970년대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이 미래의 산업, 사회, 생활 전 분야에 걸쳐 필수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는 특히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와 근면성, 청결한 생활 습관 등이 반도체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진국을 배워라!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을 두고 미국과 일본의 전자업계는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가 하늘을 날려고 한다’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사실 반도체 기술 확보란 매우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16메가 D램을 개발한 모습
반도체 미래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던 이건희 회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미국과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견제에 맞서 해외 기술자들을 직접 만났고 우리 기술자들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반도체 엔지니어를 찾아 실리콘 밸리를 드나들던 시기도 이즈음이었습니다.

D램에서 낸드 메모리와 시스템 LSI로!

삼성전자는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주춤거리는 사이 과감한 투자를 계속해 나갔고 결국 삼성전자는 1992년 처음으로 D램 1위에 올랐습니다.
삼성의 반도체 신화에는 항상 경쟁사를 한발씩 앞서 나가는 집적기술과 양산기술이 있었습니다.
먼저, 삼성의 반도체는 8인치 웨이퍼를 적용한 16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8인치 웨이퍼는 공정이 복잡해 선뜻 투자하기 힘든 기술이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 1994년~1995년 반도체 호황과 맞물린 대규모 투자는 삼성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 주었습니다. 1995년 한 해 동안 메모리 반도체 부분이 올린 이익만 무려 2조 7,00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시대의 도래가 메모리 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보고 기존의 D램 중심 사업구조를 전면 개편합니다.
이때부터 삼성의 반도체 사업 전략은 ‘투 트랙 Two Track’으로 진행되는데요. D램의 의존도를 줄이면서 낸드플래시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시스템 LSI에 진출한다는 전략입니다.
2012년 삼성은 메모리와 시스템 LSI를 통틀어 34조 원의 매출을 올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0퍼센트를 처음으로 돌파합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성공의 고비마다 신경영 정신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질 경영 1호로 기억될 것입니다.


휴대폰 세계 1위, 갤럭시의 위업

2013년 3월 14일, 미국 뉴욕의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3,000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전 세계 언론의 비상한 관심 속에 삼성의 갤럭시 S4가 공개되었습니다. 이후 선 주문량만 1,000 만대를 넘어섰고, 주요 시장조사 기관들은 갤럭시S4의 누적 판매량이 1억 대 가까이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갤럭시S4 공개된 모습
사실 2000년대 초 삼성은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 1위는 어렵다는 분위기였어요.

세계 1등이 되려면 근육을 바꾸고 걸음걸이, 자세도 바꿔야 합니다.
조직도 완전히 바꿔야 해요. 디자인, 기술, 조직 등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이건희 회장

이후 삼성전자는 모든 전략을 원점으로 돌리고, 휴대폰 1등 달성 전략을 다시 짜기 시작했습니다. 디자인과 개발체제에도 대폭 손질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1990년 중반부터 ‘3선 체제 개발’이 운영되었습니다. 1선은 상품화를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팀이고 2선은 1년 후를 대비하는 개발조직, 3선은 2~3년 후를 대비하는 개발 조직인데요. 3개 개발 조직이 동시 운영되면서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제조 방식도 셀 방식으로 전환해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를 갖췄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스마트폰 돌풍!
삼성은 2010년 5월, 갤럭시S를 공개하는데요. 출시 7개월 만에 갤럭시S는 전 세계에서 1,000만대가 팔린 삼성전자의 첫 ‘텐밀리언셀러 스마트폰’이 되었습니다.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으로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4억 대의 휴대폰을 팔아 2012년 사상 처음으로 휴대폰 판매 세계 1위에 오릅니다. 글로벌 톱을 향한 삼성의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 삼성 휴대폰 신화에는 신경영 철학의 핵심인 ‘질 경영’ 의지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TV,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1990년대 초, 삼성 TV는 미국 양판점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무렇게나 뒹굴던 모습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세계 톱 클래스는 아니었습니다.
가전 회사에서 TV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중요한데요. 삼성에게 TV 1등은 질 경영을 마무리하는 마침표였습니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삼성 TV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립니다.
2003년 삼성은 브라운관 TV 생산을 중단하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당시 브라운관 TV 비중은 전체 판매량의 27%를 차지할 만큼 컸지만, 단기적인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2005년에는 ‘TV일류화프로젝트 팀’이 만들어지고 즉각 삼성TV의 현주소 파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경쟁사들은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대형 및 고급 제품군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원가경쟁력이나 제품 기능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사용자 편의성이나 화질, 디자인 등의 부분에서는 상대적인 열세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브랜드력이나 판매 현장에서의 관리도 부족했습니다.

삼성은 조직 개편을 통해 연구-생산-마케팅 전반에서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모습으로 변화해 나갑니다. 이와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삼성은 TV사업에서 강력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준비해서 삼성 TV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제품이 보르도 TV입니다.

7년 연속 세계 1위 삼성TV 탁월한 성능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보르도 TV는 삼성 TV를 세계 1위로 끌어올렸는데요.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하기 시작한 지 37년 만에 이룬 쾌거였습니다!
특히 적포도주가 약간 남아있는 와인 잔을 형상화하면서 앞, 뒤, 측면을 검은 광택으로 처리한 디자인은 전 세계 프리미엄 제품 고객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삼성 TV는 2011년 3월 세계 최초로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스마트 TV를 선보이며 또 한발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2012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LCD TV 세계시장 점유율은 7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어요. 삼성 LED TV와 스마트 TV의 연이은 성공은 과거의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전지분야 글로벌 톱! 2차 전지의 진격

삼성의 경쟁력 요인으로 세계적인 수준을 갖춘 부품업체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건희 회장은 2차 전지 사업에서도 철저하게 ‘질 경영’을 주문했습니다. 특히 안전성을 강조함에 따라 삼성SDI는 개발, 제조 등 부문별로 대대적인 품질 점검과 함께 ‘K-812’로 명명한 2차 전지 일류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50억 개의 2차 전지 일러스트
하지만 2차 전지 사업은 초반에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신규 비즈니스로서 리스크가 컸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는 두뇌, 디스플레이는 눈, 배터리는 심장에 해당한다. 배터리 사업은 그만큼 중요하다. 배터리 사업을 업그레이드 시킬 대안을 마련했는가?”라고 강하게 지시했고 결국 TF가 구성되어 사업은 급 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삼성SDI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초고밀도 리튬이온 전지를 개발한 데 이어 세계 최고 용량 제품인 2,200mAh 원형 전지 양산을 시작하며 기술 리더십을 발휘해 나갔는데요. 이러한 노력으로 2010년에는 19.8퍼센트의 점유율로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글로벌 마천루 시장에서 삼성을 우뚝 세우다!

2004년 12월 삼성물산은 두바이 정부가 국가 랜드마크로 건립하기로 한 세계 최고층 건축물 ‘버즈 두바이’(이후 부르즈 할리파로 건물명 변경) 시공을 수주했습니다.

부르즈 할리파 일러스트
1990년 초만 해도 세계시장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삼성물산! 10년 뒤에는 글로벌 마천루 시장의 최강자로 변신했는데요. 이는 초고층 빌딩 건축을 회사의 핵심사업으로 선정하고 기술 확보에 역량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초고층 빌딩은 도시의 경쟁력이자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앞으로 시장이 커질 것입니다

– 이건희 회장

이후 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마천루 시장이 열렸고, 삼성물산은 1993년 11월 수주한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성공적으로 건축하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필리핀의 피비콤타워(55층)와 태국 로열차랑쿰타워(63층), 말레이 암팡타워(50층) 등도 삼성물산의 건설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얻은 삼성물산의 초고층 빌딩 건축 노하우는 곧 사장될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진행된 고강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관련 기술 인력의 상당수를 퇴출하는 방안이 논의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강한 의지로 삼성물산은 핵심 기술 인력을 지킬 수 있었고 이후 이들은 부르즈 할리파 공사 수주를 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10년 1월, 삼성물산은 부르즈 할리파 건설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세계 톱3 초고층 건물 건립에 모두 참여한 건설회사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며 글로벌 마천루 시장의 최강자임을 입증했습니다.


드릴십으로 세계를 제패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중공업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밖으로는 해외 조선업체에 치이고 국내에서는 경쟁사에 밀리는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삼성중공업에 “실패해도 좋으니 마음껏 도전하라”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라”며 임직원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중공업은 ‘드릴십’(깊은 바다에서 원유와 가스 시추 작업을 수행하는 선박형태의 시추설비)에 승부수를 띄웁니다.
당시 해상 유정개발은 육지 근처 얕은 바다에서 벗어나 심해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해상 유정개발에 주로 쓰이던 반 잠수식 시추선은 이동속도가 느리고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없어 심해용으로는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드릴십은 1척당 6억 달러가 넘는 고부가가치 선발이란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1999년 이후 2004년까지 유가 안정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심해 시추 수요가 줄어들면서 드릴십 발주가 사라집니다. 그래도 삼성중공업은 드릴십 사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일감이 끊어진 5년간 드릴십 설계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공장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등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5년, 거짓말처럼 드릴십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한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삼성중공업은 1996년 이후 전 세계 드릴십 분야에서 독보적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삼성의 디자인 경영

이건희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디자인센터를 설치하라는 구체적인 지침마저도 먹혀들지 않고 있었고 핵심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1996년 ‘디자인경영의 해’를 선포하고 1997년부터는 ‘자랑스런 삼성인상’에 디자인 부문을 신설하는 등 삼성의 디자인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2005년 4월에는 주요 계열사 사장을 이탈리아 밀라노로 불러 모아 ‘밀라노 디자인 전략회의’를 소집합니다.
삼성전자는 밀라노 디자인 전략회의 후 디자인 관련 조직을 대폭 보강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특히 TV 분야에서 삼성의 디자인은 독보적인 수준으로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레드와인 잔에서 모티브를 얻은 ‘보르도TV’는 밀라노 디자인 전략회의 직후 야심 차게 준비한 전략제품이었습니다.

경영자는 기술을 알아야 한다, 기술경영

기술경영은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철학의 중요한 주춧돌입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누구보다 먼저 경영자가 기술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이공계 출신 중역들을 요직에 대거 발탁하는 한편, 인문계 출신 CEO들에게도 기술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2005년 1월에는 기술준비경영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5~10년 후 미래를 기술로 준비하고 이를 통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2010년 가지 총 47조를 투자해 차세대 성장 엔진을 육성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1987년 매출의 2.2퍼센트이던 연구개발비를 5년 후인 1993년 4.3퍼센트로 높였고 2011년에는 4.9퍼센트 수준으로 또다시 증가시켰습니다.
또한, 연구개발 인력도 1993년 13,000명에서 2012년 73,00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삼성이 아날로그 시대의 후발주자였다가 빠르게 선진 기업들을 추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기술 드라이브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삼성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세계인과 함께 호흡하며 사랑받는 글로벌 일류 기업, 글로벌 삼성은 이제 세계인과 함께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신경영 20주년을 맞는 지금도 세계 초일류, 월드베스트를 추구하는 삼성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음 3편에서는 인재를 중시하는 삼성의 경영철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20년이 되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인간은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더 열심히 뛰고,
더 사물을 깊게 보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희 회장, 2013년 4월 6일 김포공항, 87일간의 해외일정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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