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삼성그룹블로그 삼성이야기 로고 이벤트 따뜻해유 바로가기

삼성이야기 메뉴보기

[삼성앤유] 고산 윤선도의 삶이 깃든 해남 보길도 여행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조선 중기 시조 문학의 대가인 고산 윤선도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해남과 보길도.

효종이 하사한 ‘녹우당’부터
<산중신곡 > 이 탄생한 ‘금쇄동까지.

고산 문학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해남 보길도로 안내합니다~

※ 아랫글은 삼성앤유에 소개된 콘텐츠를 블로그용으로 수정한 글입니다.


고산 윤선도와 함께하는 해남과 보길도

글 박미경
사진 안홍범, 일러스트 이누리


지금 그 땅에선 고통을 견뎌낸 것들이 푸르게 빛나고 있다. 언 흙을 뚫고 올라와 시린 바람을 이겨낸 마늘과 양파와 보리. 햇살 받아 반짝이고 바람 따라 일렁이는 그것들을 보노라면 아름다움은 아픔 다음에 완성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17년의 유배와 25년의 은거. 세상이 준 아픔을 눈부신 시어(詩語)로 황홀한 원림(園林)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여기 있다. 그곳에 가면 400년 저편의 고산 윤선도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햇살 받아 반짝이고 바람 따라 일렁이는 그것들을 보노라면 아름다움은 아픔 다음에 완성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산중신곡> 중 ‘오우가’ 첫 수

순순히 와준다면 그건 새봄이 아니다. 성큼 다가왔다가 냉큼 사라져버리고 불쑥 돌아와선 이내 숨어버린다. 여기라고 예외는 아니다. 변덕이 몹시 심한 애인처럼 이곳의 새봄도 ‘밀당’을 반복한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해남은 붉은 땅과 푸른 바다를 품은 곳이다. 황토에서도 갯벌에서도 사계절 내내 무언가가 나고 자란다. 풍요로운 이땅에도 그 정도 시련은 있어야 공평하다.

주인을 기다리는 댓돌 위 고무신이 아련하다

푸르게 숨 쉬는 전통

아니, 공평하단 말은 취소다. 신록의 계절이 아니건만 녹우당(綠雨堂)엔 벌써 ‘초록비’가 내린다. 뒤뜰의 대나무숲이나 뒷산의 비자나무숲에서 앞뜰의 동백나무나 사당 옆 소나무에서 시리도록 푸른 비가 쉼 없이 쏟아진다. 녹우단(綠雨壇)은 연동마을에 있는 해남 윤씨 종택이다. 그 가운데 사랑채인 녹우당은 효종이 대군시절 스승이었던 윤선도에게 하사한 건물이다. 본래 수원에 있던 것을 고산이 여든두 살 되던 해 이곳으로 옮겨와 그대로 복원했다.

수원의 그곳과 해남의 이곳은 같은 건물이되 ‘같은 집’이 아니다. 집이란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드나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녹우당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소치 허유 같은 이들이 마음을 나누거나 영감을 길어 올리던 곳이기도 하다. 초록 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집에서 문화 예술의 꽃이 피어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종택에는 14대 종손 윤형식 씨가 산다. 그이는 오늘 출타 중이다. 전화로 인사를 건네니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녹우당은 효종이 대군시절 스승이었던 윤선도에게 하사한 건물이다.
세월 속에 벗겨지고 빛바랜 녹우당에도 어김없이 초록 바람이 넘실댄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소탈함과 너그러움이 목소리에 가득하다. 소통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전통을 지킬 수 있는지도 모른다. 녹우단 앞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이 있다. 윤선도의 육필은 물론이고 그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제240호)을 만날 수 있다. 한 집안에 수천 점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뒤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그것들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 시어머니가 참말로 대단한 분이여. 한국전쟁 때 그 많은 유물을 땅속에 파묻고 하나도 빠진없이 지켜낸 분이랑께. 좀 엄하시긴 했어도 종부로선 그만한 분이 없었제

가게 앞에서 만난 이형애 할머니는 해남 윤씨 종가의 13대 종부다. 열아홉 살에 시집와 27년간 종갓집 며느리로서 책임을 다했던 할머니는 국회의원으로 광주시장으로 분주히 활동하던 남편(13대 종손 고 윤영선 씨)의 뒷바라지를 위해 35년 전 이 집을 떠났다. 세 곳의 사당을 돌보고 열한 분의 제사를 모시며 수백 명의 손님과 수십 명의 일꾼에게 밥을 지어줘야 했던 시절. 광주에 살면서 틈틈이 이곳을 찾는 할머니는 “고단했던 그 세월이 어느덧 추억이 됐다”고 담담히 웃으며 회고한다. 지나고 나면 그리워지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이름의 마법이다.

고요한 미황사에선 스님들의 발걸음도 사뿐하다

치유라는 이름의 비경

이제 고산 문학의 산실로 간다. 먼저 윤선도가 지은 18수의 연시조 <산중신곡>이 탄생한 금쇄동이다. 이곳은 고산이 영덕 유배에서 풀려난 직후에 선물처럼 만난 도원경이다. 당시 그의 나이 쉰네 살. 그때부터 본격적인 은둔에 돌입한 그는 ‘한없이 불행한 정치인’에서 ‘더없이 행복한 시인’으로 거듭난다. 그가 만약 정쟁의 희생양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유배와도 은거와도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면 그토록 눈부신 시조 문학은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예술에도 인생에도 아픔만 한 거름은 없다.

수백 년간 금쇄동에서 윤선도 묘역을 지킨 문인석
수백 년간 금쇄동에서 윤선도 묘역을 지킨 문인석
금쇄동은 가는 길이 여간 고생스럽지 않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 굽이굽이 이어진 데다 고산이 조성한 원림이 제대로 복원돼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아쉬울 건 없다. 윤선도의 묘지에서 잠시 다리를 쉬노라면 ‘오우가’에 나오는 벗들인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 나그네의 지친 발걸음을 따뜻이 위로한다. 병풍 같은 앞산에 달이 떠오르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눈부시다.
단 하루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을 ‘그 벗’은 사실 우리의 벗이기도 하다. 당연한 그 사실이 불현듯 낯설게 다가온다.

마애여래좌상과 부도 연화 문양, 꽃이 피기 시작한 해남, 대흥사 일지암 국보 제308호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천년 고찰 미황사의 부도 연화 문양/ 물맛이 좋아 차를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로 통하는 대흥사 일지암

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 현산면 구시리다. 들일하는 농부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옆 마을인 만안리에서 이곳으로 농사를 지으러 다니는 윤양순 아주머니는 추위 때문에 미처 뿌리내리지 못한 양파를 일일이 다시 심고 있다. 농사는 하늘과의 동업이지만 농부는 동업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산중신곡>에는 농부를 향한 고산의 애정이 곳곳에 묘사돼 있다. 그 가운데 ‘하우요’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가 ‘장마철에도 몸을 움직이는’ 농부에게 다정스레 휴식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단함을 헤아리는 마음. 아름다운 시어를 낳은 건 바로 그 마음이다.

비 오는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장마 비 매양이라 쟁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아라

<산중신곡> 중 ‘하우요’ 첫 수

끝에서 삶은 다시 시작되고

해남 금쇄동이 고산의 힐링캠프였다면 보길도 부용동은 그의 유토피아에 가까웠던 곳이다. 고산이 이곳을 발견한 건 병자호란 때다. 강화도로 가던 중 치욕적인 항복 소식을 접하고 세상을 등질 요량으로 뱃머리를 제주도로 돌린 그는 중간에 보길도를 만나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삶은 다시 시작된다는 걸 고산은 간단히 증명해 보인다.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게라는 뜻의 세연정‘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게’라는 뜻의 세연정

부용동 원림은 윤선도가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조성한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이다. 대를 쌓고 정자를 지었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절묘하게 활용했다. 사면의 들창을 모두 들어 올린 세연정에는 바람이 느리게 놀다 가고, 하늘을 거울처럼 비춘 세연지에는 구름이 천천히 쉬어간다.

세연정에서 30분쯤 걸어가면 낙서재와 곡수당이 나온다. 세연정이 유희의 공간이라면 두 곳은 생활과 강학이 이뤄지던 살림집이다. 독서실인 동천석실은 낙서재 맞은편 산 중턱에 있다.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모두 가려버린 오솔길을 한참 오르면 고산이 신선처럼 소요하던 동천석실이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바위들 사이로 맞춤하게 들어선 ‘허공 위의 한 칸 집’. 그곳에서 문득 뒤돌아보면 낙서재와 곡수당이 있던 부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있던 곳’을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익숙하던 그곳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낙서재와 동천석실을 맞은편에 둔 이유가 그 때문은 아니었는지 짐작해본다.

고운 볕이 쬐얏는데 물결이 기름 같다
이어라 이어라 그물을 주어두랴 낚시를 놓으리까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탁영가(濯纓歌)의 흥이 나니
고기도 잊을로다

<어부사시사> 중 ‘춘사’ 5수

황긍빛 물결이 일렁이는 다도해 풍경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다도해 풍경

곡수당 뒤쪽 산길은 예송리해변으로 이어진다. 바닷물이 옥빛이다. 때마침 내리쬔 봄볕 덕분에 고산의 표현대로 ‘물결이 기름 같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어부로 한평생 살아온 김종길・백순월 씨 부부가 갓 채취한 미역을 건조장에 널고 있다. 이른 아침 바다로 나가 두어 시간은 족히 건져 올린 것들이다.

전복과 미역을 같이 허는디 지난여름에 태풍 피해를 입어부렀소. 전복 양식장이 엉망이 돼분 바람에 시설을 죄다 새로 허고 있다 안 허요. 어쩌겄소. 속은 아프제만 새로 시작해야제

옹기종기 모여있는 돌이 아치 공룡알 같다 해서 이름 붙은 보길도 공룡알 해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이 마치 공룡알 같다 해서 이름 붙은 보길도 공룡알해변/ 이른 봄볕에 바지런히 미역을 말리는 김종길 씨 부부

<어부사시사> 속 어부들과 달리 현실 속 그들은 지금 한창 시름에 잠겨 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동업자인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건 어부도 마찬가지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가 정말로 원망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고산 윤선도(1587~1671)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여덟 살 때 큰아버지에게 입양돼 해남에서 자랐으며 이 후에도 여러 해를 해남에서 살았다. 올곧고 강직한 성품이었으나 조선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며 당쟁 에 휘말려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냈다. 정치와 학문ᆞ예술ᆞ천문ᆞ의약 등 다방면으로 해박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시조 문학을 장식한 대가로 알려졌다.

해남의 아름다운 길

이 땅의 최남단인 해남에는 도보 여행길이 유독 많다. 끝이 곧 시작이기 때문에 해남을 출발지로 삼는 길들은 그 어느 곳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해남이 ‘국토순례 1번지’로 떠오른 데는 단지 한반도의 끝자락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닷길과 숲길, 들길과 산길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이어지는 해남의 길들. 각각의 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암담하게 여겨졌던 일들이 어느덧 담담해진다.

삼남길(해남구간)

삼남길은 해남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도보 천 리 길’이다.

삼남길은 해남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도보 천 리 길’이다. 그 가운데 해남 구간은 땅끝마을과 강진군을 연결하는 삼 남길 최초 구간이며 모두 네 구간으로 구성돼 있다.1구간 인 처음길(16.9km)은 넓은 황톳길・호젓한 오솔길・경관 좋은 산길을 두루 만날 수 있다. 2구간 올망길(12.9km)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30~40년 전에 이용하던 옛길을 복 원한 곳으로 사구미마을에서 영전마을로 넘어가는 길목의 삼나무숲이 일품이다. 3구간 해들길(9.1km)은 갯벌과 억 새갈대가 어우러진 해안길이며 4구간 나들길(17.4km)은 해안도로와 농로를 따라 걷는 혼합길이다. 어디를 택하든 해남의 눈부신 자연과 따뜻한 사람을 연이어 만날 수 있다.

땅끝천년숲길

땅끝마을에서 송호해변을 거쳐 미황사에 이르는 14.5km 구간이 개통됐다.

이 길도 삼남길처럼 땅끝마을에서 시작한다. 총 길이 49km 가운데 현재 땅끝마을에서 송호해변을 거쳐 미황사에 이르는 14.5km 구간이 개통됐다. 땅끝 맴섬에서 송호해변에 이르는 구간은 해안 산책로이고 달마산 도솔봉에서 미황사 로 가는 구간은 우거진 숲길이다. 그 가운데 숲길은 ‘태초’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천년의 숲길이다. 누군가와 나란히 걸을 수도 없는 그 길에서 오래도록 잊고 있던 ‘나’와뜨겁 게 해후할 수 있다. 2구간인 미황사역사길과 3구간인 다산 초의교류길이 머잖아 완공되면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공존 하는 명품길이 될 땅끝천년숲길. 봄빛이 모락모락 피어나 는 그 길을 걸어봐도 좋겠다.

문화생태탐방로 땅끝길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가운데 한 곳으로 출발 지점은 땅끝마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가운데 한 곳으로 출발 지점은 땅끝마을이다. 1구간인 땅 끝바닷길(8km)에선 굽이진 해안선과 점점이 떠 있는 섬을 넘치도록 감상할 수 있다. 2구간인 점재길(6km)은 윤선도가 보길도에 갈 때 이용하던 길. 점재를 넘고 청정 계곡 모래미골을 지나 영전마을에 이른다. 마을 어귀 영전백화점 에서 고무신과 호미 같은 농어촌 생필품을 구경하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 3구간인 묵동갯길(11km)은 드넓은 바다와 생명이 숨쉬는 갯벌을 비롯해 우아한 철새를 감상하는 구간이고 4구간인 쇄노재길(18km)은 아름다운 산자락과 아기자기한 마을을 만나보는 구간이다.

우수영 강강술래길

전라우수영성지를 중심으로 해남의 숨결을 느껴보는 길이다.

전라우수영성지를 중심으로 해남의 숨결을 느껴보는 길이다. 총 길이가 7.3km에 불과하지만 길에 스민 역사의 향기는 그 어느 곳보다 그윽하다. 명량대첩지인 울돌목을 출발해 우수영 국민관광지・강강술래전수관・충무사・우수영항・법정 스님 생가・방죽샘・동헌터・우수영 5일장・망해루로 길이 연결된다. 전라우수영성지엔 해안 따라 흙담과 돌담으로 쌓아 올린 성벽이 드문드문 남아 있고 우수영 5일장엔 훈훈한 인심이 살아 있다. 수군을 돕기 위해 기꺼이 의병으로 나섰던 사람들과 무소유의 가치를 우리에게 심어준 법정스님. 그들을 기리며 걷는 것이 이 길과 동행하는가장 의미 있는 방법이다.



욕설, 비방 혹은 게시글과 상관없는 내용의 댓글은 삭제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