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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스포츠단] 삼성라이온즈 30년, 푸른 피의 거포들! 2편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삼성라이온즈하면 어떤 선수가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영원한 삼성맨 양준혁, 푸른 피의 홈런 타자 이승엽 등
삼성라이온즈에는 최고의 스타 선수들이 있었는데요~
 
삼성라이온즈의 30년 역사를 함께한 선수들,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원한 삼성맨 양준혁과 ‘푸른 피의 홈런 타자’ 이승엽 

1993년 삼성엔 이만수의 뒤를 잇는 괴물 타자가 등장합니다. 영남대 출신의 양준혁이에요. 양준혁은 1991년 실시한 신인지명회의에서 쌍방울로부터 1차 지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양준혁은 입단 대신 입대를 선택했습니다. “삼성이 아니면 프로에서 뛸 의사가 없다”며 상무에 입대한 것이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양준혁은 1993년 삼성 유니폼을 입자마자 펄펄 날았습니다. 데뷔 첫해 타율 3할 4푼 1리, 23홈런, 90타점을 기록하며 해태(KIA의 전신) 이종범을 꺾고 신인왕에 올랐습니다. 특히 양준혁은 1996년 팀 사상 최초로 20(홈런)-20(도루)의 주인공이 되고, 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섭니다.
이후로도 양준혁의 타격 신화는 계속됐습니다. 데뷔 이후 9년 연속 타율 3할, 14홈런, 80타점 이상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입니다. 하지만 그런 양준혁도 1999년 해태로 트레이드되는 아픔을 겪었는데요, 역시 표면적 이유는 김시진, 장효조처럼 ‘큰 경기에 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준혁은 해태를 거쳐 2000, 2001시즌을 LG에서 뛰며 고향으로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2002년 김응룡 감독의 요청에 따라 다시 삼성 유니폼을 입으며 ‘라이온즈맨’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양준혁은 “내 몸엔 영원히 푸른 피만 흐를 것”이라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선봉장이 될 것을 자신했습니다. 실제로 그해 양준혁은 삼성이 창단 20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LG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2천 안타 기록자인 양준혁은 “현역에서 뛰는 동안 ‘양신’, ‘괴물’, ‘호타준족’ 등 여러 가지 찬사를 들었지만, 가장 좋아했던 단어는 ‘삼성맨’이었다”며 “2010년 은퇴식을 통해 영원히 삼성맨으로 남을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고 회고했습니다. 2010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양준혁은 현재 야구해설가와 야구재단 이사장으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푸른 피의 홈런 타자’ 이승엽

이만수-양준혁의 뒤를 잇는 또 한 명의 삼성 출신 강타자는 이승엽이었습니다. 이승엽은 이만수와 양준혁이 그랬던 것처럼 대구·경북을 뛰어넘는 전국구 스타였는데요, 1995년 대투수를 꿈꾸며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막상 프로에 입문하자 타자로 전향했습니다. 당시 우용득 삼성 감독은 이승엽을 가리켜 “이만수, 양준혁의 대를 잇는 거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믿는 야구전문가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우 감독은 19살 이승엽을 주전 1루수로 기용하며 신뢰를 과시했습니다. 이승엽은 데뷔 첫해 타율 2할 8푼 5리, 13홈런, 73타점으로 우 감독의 신뢰에 실력으로 화답했죠. 이승엽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발휘된 건 1997년부터였습니다. 이해 이승엽은 32홈런을 기록하며 팀 사상 한 시즌 최다홈런의 주인공이 됐답니다. 여기다 타점도 114개, 안타도 170개나 치며 홈런·타점·최다안타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이해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습니다.

국민 타자로 발돋움한

‘삼성 4번 타자’ 이승엽은 1999년엔 급기야 ‘국민 타자’로 발돋움합니다. 이해 54홈런을 기록하며 1998년 OB 타이론 우즈가 작성한 한 시즌 최다홈런(42)을 가볍게 깨트린 것입니다. 1998년 263만 명에 불과했던 프로야구 총관중이 1999년 322만 명으로 불어난 것도 이승엽의 홈런을 보려고 많은 야구팬이 구장을 찾은 까닭이었습니다.
2002년 이승엽은 타율 3할 2푼 3리, 47홈런, 126타점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인 4번째 정규시즌 MVP에 등극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6차전에서 드라마 같은 3점 홈런을 치며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3년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인 56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이듬해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로 이적합니다. 2006년 요미우리로 다시 유니폼을 갈아입은 이승엽은 그 해 41홈런을 치며 일본 열도에 ‘승짱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8년간의 일본 외도를 마친 이승엽은 친청팀 삼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성은 이승엽의 가세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승엽이야말로 가장 삼성맨다운 선수”라고 말합니다. “야구 실력도 일류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노력 역시 일류다.” 야구장 밖에서도, 절도 있는 생활과 적극적인 팬 서비스로 일류선수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까닭이겠죠? 이승엽이 화려한 실적 못지않게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적인 ‘삼성맨’의 특징을 그라운드 안팎에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낳은 최고의 선수는 바로 삼성 자신

삼성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과 2002, 2005,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은 6번째 쾌거였죠. 우승 횟수만 따지자면 해태의 9회 우승(KIA까지 합치면 10회)에 이어 두 번째 입니다. 하지만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은 삼성이 유일합니다. 1997년 이후 2009년까지 삼성은 가을무대에 빠짐없이 등장했습니다.
삼성이 일회성 우승팀보다 이처럼 항구적 강팀으로 자리 잡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모그룹의 전폭적인 지원과 삼성 특유의 시스템 야구 덕분입니다. MBC SPORTS+ 손혁 해설위원이 “삼성이 역대 배출한 선수 가운데 최고의 선수는 바로 삼성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실 삼성은 국외야구와의 교류에 가장 적극적인 팀이었습니다. 1982년 미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한국에 초청한 것도 삼성이었고, 1985년 한국 프로팀으론 최초로 미국에 스프링캠프를 차린 팀 역시 삼성이었습니다. 삼성은 메이저리그 명문팀 LA 다저스와 자매결연을 맺고서, 다저스의 스프링캠프였던 베로비치에 선수단을 파견해 선진야구를 배우도록 도왔습니다. 삼성 선수들은 수년간 다저스 코치들로부터 최신 선진야구를 배웠고, 이는 한국야구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죠.
2군 훈련장도 삼성이 가장 먼저 만들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볼 파크’가 그것인데요~ 1986년 경북 경산에 세워진 ‘라이온즈 볼 파크’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종합훈련장으로,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2군’과 ‘육성’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항구적 강팀을 만들려면 우수 자원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라이온즈 볼 파크’를 통해 많은 유망주를 스타선수로 키웠답니다.
현재 삼성은 신인스카우트와 유망주 육성에서 가장 뛰어난 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찬사가 ‘시스템 삼성 야구’에요. 삼성의 2군 훈련장에 자극받은 다른 구단들이 하나 둘 연습장을 지으며 삼성의 육성야구를 본받기 시작했지만, 삼성의 풍부한 노하우는 아직 전수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 구단 운영팀장은 “삼성의 구단 운영 노하우를 여러 팀에서 벤치마킹했고, 지금도 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신인선수 스카우트와 체계적인 육성 그리고 절묘한 1군 기용 등 이른바 ‘시스템 삼성 야구’를 따라 하려면 2, 3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털어놨습니다. 올 시즌도 삼성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힙니다. 아니 삼성의 아성이 10년 이상 지속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에요. 그 배경엔 역시나 모그룹의 전폭적이고, 과학적인 지원이 숨어 있습니다. 중심은 삼성 트레이닝센터(STC)입니다.
2007년 경기도 용인시에 800억 원을 들여 만든 STC는 삼성 전체 스포츠단이 이용하는 재활센터입니다. 한국 최고의 체력단련실과 각종 첨단 재활 치료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일각에선 “태릉선수촌을 능가한다”고 평합니다. 삼성 야구단은 STC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다른 팀처럼 부상자가 발생해도, STC에 입소하면 재활 속도가 빠르고, 치료율이 높기 때문이죠.
선수층이 얇아 부상자 예방과 빠른 재활이 팀 성적을 좌우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STC는 그야말로 삼성에겐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오승환, 권오준, 안지만, 최형우 등 삼성 주전선수들은 STC에 입소해 빠르게 부상을 치료하고, 무리 없이 1군에 합류하곤 했습니다. 삼성 사령탑이던 KIA 선동열 감독이 “삼성에 있을 땐 부상 걱정 없이 야구했다”고 말하는 것도 STC의 역할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2014년 대구에 새 구장이 완성되면 삼성은 한국 최고의 명문구단이 될 터

1982년 프로야구에 참가한 구단 가운데 아직도 팀명이 변하지 않은 팀은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뿐입니다. 두 구단은 한국 최고의 명문구단으로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위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삼성은 한국프로야구의 질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하며 프로야구의 인기를 이끌었고, 혁신적 구단 운영으로 실업야구의 구습에서 탈피하지 못했던 프로야구를 정상궤도로 올렸습니다. 이제는 명실공히 KBO 리그 최고 강팀으로 프로야구를 주도하고 있어요.
2014년 대구에 최신식 새 구장이 완공된다면 삼성은 성적뿐만 아니라 관중몰이에서도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리라 예상됩니다. 만약 그날이 온다면 삼성은 일본의 요미우리, 삼성의 뉴욕 양키스처럼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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