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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앤유] 야수파 거장 앙리 마티스의 두 번의 시련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젊은 시절, 앙리 마티스의 꿈은 법률가였다는데요~
삶에 찾아온 두 번의 변화가
그를 미술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다고 합니다.

야수파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과 인생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 아래 글은 삼성앤유에 소개된 콘텐츠를 블로그용으로 수정한 글입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가슴 뛰는 삶으로

글 정민영(미술평론가)

푸른 누드 iv, 1952, 종이 콜라주, 마티스 미술관
<푸른 누드 iv>, 1952, 종이 콜라주, 마티스 미술관
열정은 마음의 패딩점퍼입니다. 세찬 변화의 바람에도 열정은 절망의 냉기를 샅샅이 막아줍니다. 열정의 부재 속에 마주친 변화는 바람 속 맨몸처럼 인간을 좌절시킵니다. 변화는 열정을 동력 삼아 새 길을 개척합니다. 외적인 자극에서든 내적인 자극에서든 변화는 끌어안기에 따라서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변화는 변신을 위한 절호의 찬스입니다. 위대한 화가들은 뜻밖의 변화를 발판 삼아 부단히 ‘가슴 뛰는 삶’을 경영했습니다.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1869~1954)에게 찾아든 두 번의 변화는 도약의 기회였다. 첫 변화는 인생의 진로를 바꿨고 두 번째 변화는 예술세계 확장으로 결실을 맺었다.

프랑스 동북부 로카토캉브레지에서 곡물상의 아들로 태어난 마티스는 처음에 법률가가 되려고 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기로 근무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가 스물한 살 때 병원에 입원한다. 맹장염에 합병증까지 겹쳐서다. 1년간 요양이 필요했다. 이때 어머니가 심심해하는 아들을 위해 그림도구를 사다 준다. 마티스는 붓을 들고 물감을 칠한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림에 홀렸다. 자제할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일종의 파라다이스로 옮겨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뭔가가 나를 몰아갔다

색의 황홀경에 취한 그는 미술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이로써 20세기 최대 색채화가는 법률가에서 화가로 진로를 바꾼다. 그에게 질병은 ‘새옹지마(塞翁之馬)’였다. 투병이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창조적 열정에 불을 지핀 것이다.

변화는 노력을 통해 비로소 의미화된다. 가슴 뛰는 경험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순간의 기쁨에 그치고 만다. 짜릿한 희열은 노력을 먹고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마티스는 수술 후 변호사 사무실에 복귀해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 안정된 직장을 버린다. 아버지의 반대마저 뿌리치고 파리로 간다. 1895년 국립미술학교 교수인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아틀리에에서 기초부터 착실히 배운다. 미래의 대가는 그렇게 자신을 단련시키며 야수파의 대표주자로 우뚝 선다.

 공중 곡예사 코도마스, 1947, 종이 콜라주, 랭스 미술관
<공중 곡예사 코도마스>, 1947, 종이 콜라주, 랭스 미술관

붓 대신 가위를 든 화가

두 번째 변화는 만년에 찾아든다. 역시나 질병 때문이었다. 이때 작품 재료가 변한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던 마티스는 일흔이 넘어 결장암 수술을 한다. 설상가상 상처가 감염되는 바람에 탈장까지 생긴다. 극심한 고통과 더불어 13년 동안 침대 신세를 진다. 더는 이젤 앞에 앉을 수도, 손 떨림으로 붓을 쥘 수도 없었다. 화가로서 큰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열정은 식지 않았다. 돌파구는 가까이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 가위로 색종이를 오리기 시작했다. 이로써 종이에 불투명 수채물감을 칠해 오려 붙이는 콜라주 작품이 탄생한다. 작업은 마티스가 가위질을 한 뒤 조수에게 지시해 캔버스에 색종이를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서 온몸이 마비되는 희귀병에 걸린 주인공이 출판사 여직원의 도움을 받아 눈 깜빡임 20만 번으로 자서전을 쓰는 것처럼, 마티스도 조수의 도움을 받아가며 새로운 조형세계를 선보였다.

푸른색이 매력적인 <푸른 누드 Ⅳ>는 마티스식 누드의 특장이 고스란히 압축돼 있는 작품이다. 머리 위로 올리거나 늘어트린 팔과 외로 꼬고 앉은 다리는 여체의 아름다움을 부드러운 곡선미로 형상화했다. 마티스가 선호한 포즈였는지 이런 포즈의 색종이 작품이 여러 점 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수많은 파란색 종이를 조각조각 붙인 이음자국과 색종이의 색상 차이가 오밀조밀한 맛을 더해준다.

마티스의 색종이 작업은 일관성 있게 형태의 단순함과 색채의 강렬함으로 자신을 표현해온 회화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비록 붓 대신 가위를 들었지만 마티스에게 가위는 곧 붓이었다. 색종이 콜라주는 단순화를 지향했다.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 모로가 “자네는 회화를 단순화할 거야”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색종이 작품은 단순미의 극치였다.

삶을 춤추게 만드는 변화

예술을 향한 화가의 열정은 한쪽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았다. 류머티즘 환자였던 르누아르가 그랬고, 만년에 눈이 멀었던 드가와 모네도 그랬다. 그들에게 신체적인 변화는 ‘악(惡)’이기보다 ‘약(藥)’이었다. 화가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도 궁핍의 산물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미술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자 이중섭의 눈에 띈 것이 담뱃갑 은박지였다. 그는 남들이 버린 은박지를 캔버스 삼아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뾰족한 물건으로 스케치를 하면 생기는 은지의 오목한 부분에 물감을 채워 넣는 상감(象嵌)기법으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일궈낸 것이다.

이중섭의 은지화가 열악한 환경의 선물이었다면 마티스의 색종이 콜라주는 신체 변화가 낳은 의외의 성과였다. 마티스는 극세척도(克世拓道)의 열정을 부단히 발휘했다. 일평생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인간으로서 위대한 점은 자신의 질병을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켰다는 점이고, 화가로서 위대한 점은 색종이 콜라주로 인류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조형세계를 선사했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병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에 당당히 맞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작업했다. 그들의 예술이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고통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제물을 필요로 한다.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 변화 속에 가슴 뛰게 하는 삶의 씨앗이 들어 있다. 변화를 외면하기보다 변화와 동행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변화만이 살 길이다. 변화는 삶을 춤추게 만든다.

석호, 1947, 종이 콜라주,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
<석호>, 1947, 종이 콜라주,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

명작스캔들 둘 다 진품이라고?

춤 1909,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미술관
<춤>, 1909,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미술관

춤 1910, 캔버스에 유채, 에르미타주 미술관
<춤>, 1910, 캔버스에 유채, 에르미타주 미술관

다섯 명의 남녀가 푸른색 하늘과 초록색 대지 위에서 둥글게 춤을 추고 있다. 형태가 어눌하고 색깔이 단순하다. 인체 비례도 비정상적이다. 원근법도 무시했다. 평면적이다. 그럼에도 미술사에서 ‘VIP’ 대접을 받는다. 이 그림이 바로 단순성과 강렬함으로 무장한 앙리 마티스의 대표작 <춤>이다.

<춤>은 마티스의 후원자였던 러시아 수집가 세르게이 시추킨의 주문으로 제작한 그림이다. 시추킨은 완성작 <춤>을 자신의 대저택 계단에 걸어 두었다. 이 걸작의 산파 역할만으로도 시추킨은 미술품 수집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그런데 <춤>은 외동이 아니다. 마티스가 한 점을 더 그리는 바람에 쌍둥이가 되었다.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 5층과 6층 사이 계단에 걸린 <춤>은 1909년산이고, 러시 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소장한 <춤>은 1년 뒤인 1910년 산이다.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먼저 탄생한 그림이 다소 싱겁고 뒤에 나온 그림이 짜임새 있다. 형보다 나은 동생 같다.

삶의 기쁨, 1905~1906, 캔버스에 유화, 반즈 재단
<삶의 기쁨>, 1905~1906, 캔버스에 유화, 반즈 재단

비밀은 또 있다. <춤>은 원래 독립된 그림이 아니었다. 1905년 태생인 <삶의 기쁨>에서 분가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무와 인체와 지형이 강렬한 색채와 어우러진 <삶의 기쁨>은 서구인이 꿈꾸던 황금시대를 표현한 그림으로 <춤>은 이 그림 중앙에 있던 춤추는 사람들의 포즈를 그대로 독립시킨 것이다.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시추킨이 <춤>을 의뢰한 후 그의 주변에 궂은 일이 많았다. 하지만 시추킨은 마티스의 그림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다. 남동생과 두 아들의 자살 그리고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그림의 힘으로 치유한 것이다. 그것은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그림 한 점의 위로’였다. 오래 전 <삶의 기쁨>이 <춤>을 낳았다면 이제 <춤>은 사람들에게 ‘삶의 기쁨’을 되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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