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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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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으로 알아보는 도전과 창조의 삼성 75주년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삼성그룹이 올해로 창립 75주년을 맞았는데요~

1938년 삼성상회 탄생부터 초일류 100년 삼성을 다짐하는 2013년까지!
삼성의 도전과 창조의 75년간 역사를 인포그래픽으로 준비했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삼성, 75년의 도전과 창조


1938~1987 희망의 뿌리를 내리다

1938.3 삼성상회 탄생 “암울한 시기에 싹튼 희망의 씨앗”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은 1938년 3월 대구에 지상 4층, 지하 1층의 목조건물에 삼성상회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삼성의 상호엔 ‘크고 강하고 영원하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1951 삼성물산주식회사 설립 “국가 경제 부흥의 첫걸음”
선대회장은 사업을 통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해방 후 사업 무대를 서울로 옮기고,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해 무역업을 통해 급성장을 이룹니다. 6.25 전쟁으로 모든 자산을 잃었지만 1951년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해 재기에 성공합니다.

1954.9 제일모직 설립 “수입 대체산업의 개척”
1954년 설립된 제일모직은 생산원가를 낮춰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자 대규모 공장 건설을 계획합니다. 제일모직은 전후 궁핍했던 의생활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경제재건의 선봉에 서서 국가 경제를 선도했습니다.

1957.1 공채제도 시행 “학연, 지연, 혈연을 배제한 공정한 인사제도”
1957년 국내 최초로 그룹 차원의 대졸사원 공채를 실시하여 2,000여 명의 응시생 중 27명의 최종합격자가 공채 1기로 입사했습니다. 당시 학연, 지연, 혈연에 의한 연고채용이 대부분이었던 상황에서 삼성의 공채제도는 혁신적인 능력주의 인사였습니다.

1958.2 안국화재 인수(現,삼성화재) / 1963.7 동방생명 인수 (現,삼성생명)
“금융업 진출로 사업다각화 실현”

수입대체산업 진출로 성장기반을 굳힌 삼성은 안국화재와 동방생명을 인수해 보험업에 진출합니다.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여 근대적 경영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삼성 철학에 입각한 신용주의를 관철해 보험업의 공신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965.4 삼성문화재단 설립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선도”
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은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고 현충사 조경사업을 맡아 완수하는 등 장학·육영사업, 학술·문화사업, 사회복리사업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1967.4 한국비료 공장 완공(現,삼성정밀화학) “비료 자급자족의 시대가 열리다”
국가 경제의 근간이 농업이었던 6~70년대는 식량증산을 위한 양질의 비료 생산이 국가적 과제로, 1967년 한국비료(現 삼성정밀화학)는 단일 비료공장으로는 세계 최대규모로 건설되었습니다. 1967년 10월 국가에 헌납되어 국영기업으로 운영되었지만, 1994년 7월 민영화 시책에 따라 다시 인수하였습니다.

1969.1 삼성전자 설립 “삼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사업”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 소식에 업계는 “삼성이 진출하면 국내 전자 업계가 큰 타격을 받는다”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이에 삼성은 전량 수출 조건으로 산요와 합작해 삼성산요전기주식회사를 만들었고 수원에 45만 평 규모의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선대회장은 동경 산요공장 40만 평보다 1평이라도 많게 부지를 확보토록 했습니다.

1969~1975 종합 전자산업 체제 구축 “주요 부품의 자급자족 도모”
전자산업에 진출한 삼성은 종합전자회사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브라운관을 생산하는 삼성전관,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삼성전기, 브라운관용 유리를 생산하는 삼성코닝을 잇달아 설립함으로써 종합 전자산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1974.12 한국반도체 인수 “사재를 털어서 준비한 미래”
당시 삼성은 삼성전기, 삼성정관 등이 고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자사업에 투자할 여력이나 명분이 없는 상황이었으나, 1974년 이건희 당시 중앙일보 이사는 전자손목시계용 반도체 칩을 생산하던 한국반도체 인수를 주도했습니다. 개인 자금으로 주식을 인수하기로 한 이건희 회장의 결정은 훗날 반도체 성공에 씨앗이 되었습니다.

1975.8 이코노TV 돌풍 “절전 제품으로 국내정상 등극”
1973년 10월에 불어닥친 오일파동의 여파로 국내외 경제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1975년 이코노 TV는 혁신적인 절전기능을 탑재하여 기존 TV보다 두 배의 판매량을 기록합니다.

1976.4 용인 자연농원 개장 “국토 개발의 원대한 계획”
용인자연농원(現 삼성에버랜드)은 척박한 민둥산을 개간해 만들었습니다. 국민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국토개발의 시범 모델을 제시하며 자연방사 동물원과 식물원, 가족 놀이동산을 설치해 국민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했습니다.

1977.4 조선업 진출(삼성조선 설립) “중후장대 사업에 도전하다”
삼성은 1977년 삼성조선을 설립하고 1979년 경남 거제에 제1도크를, 83년 25만 톤 규모의 제2도크를 완성함으로써 국제적인 조선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 나갔습니다.

1979~ 삼성의 아마추어 스포츠단 “꿈을 심어주는 스포츠단 육성”
스포츠의 기본 정신은 인종, 이념과 국경을 초월하는 인류애로, 스포츠가 아름다운 것은 승리보다 룰을 존중하고, 페어플레이를 생명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탁구, 레슬링, 육상, 테니스, 배드민턴,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단을 운영하며 한국 스포츠 진흥에 앞장섰습니다.

1979.3 호텔신라 개관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선보이다”
1973년 삼성은 정부로부터 영빈관을 인수해 신라호텔을 설립했습니다. 경기침체와 합작사의 자본금 불입 중단으로 건설공사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1979년 이를 극복하고 전관을 개관하여 우리나라 대표 호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2.6 삼성종합연수원 개원 “인재제일 경영철학의 구현”
1982년 6월 첨단 교육시설과 쾌적한 교육환경을 갖춘 삼성종합연수원 ‘호암관’을 개원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그룹 교육기관인 호암관은 1991년 9월 문을 연 창조관과 함께 삼성의 인재제일 경영철학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1983.11 64K D램 개발 “세계 3번째로 달성한 쾌거”
첨단산업의 상징이자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산업을 꽃피우고자 계속하여 도전한 삼성은 1983년 11월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1984.3 기흥 반도체 1라인 건설 “땀과 노력으로 초단기간 준공”
기술선진국에서도 빨라야 18개월이 걸리는 공사를 6개월 만에 완공하여, 1984년 3월 반도체 1라인이 건설되었습니다.

1987.10 삼성종합기술원 개원 “최첨단 미래 기술의 산실”
1987년 10월 개원한 삼성종합기술원은 첨단산업에서 필요한 기초기술을 개발하고 필요인력을 양성하는 기술정보센터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최첨단 미래 기술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1987~2012 초일류의 열매를 키우다

1987.12 이건희 회장 취임 “새 역사 창조의 첫발을 내딛다”
1987년 12월 1일 이건희 신임 회장이 취임하며 변화와 혁신, 도전과 창조로 세계 초일류 기업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1988.3 제2 창업 선언 “세계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선포”
“지금부터 본인은 거대한 생명체의 위대한 내일을 약속하는 제2창업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그것은 삼성의 체질을 더욱 굳세게 다져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키워나가고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에게 더욱 봉사하는 삼성을 만들어 나가자는 뜻입니다.” 삼성은 초일류기업을 향한 변화와 혁신의 의지를 비전 선포하였습니다.

1988.8 카드사업 진출 “인수금융사업 확대”
삼성은 제2창업 이후 금융사업 분야에서 기존의 보험업 외에 카드업, 증권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삼성카드와 삼성증권은 오래지 않아 기존의 생명보험, 손해보험업과 같이 업계를 대표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1988.11 전자 · 반도체통신 합병 “경영자원의 전략적 투입과 상호 시너지의 기대”
1988년 11월 가전, 정보통신, 반도체, 컴퓨터 사업부문이 한 회사가 된 삼성전자는 1988년 말 기준으로 종업원 3만 8,500명, 자산 2조 2,000억 원, 매출액 3조 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전자업체가 되었습니다. 시너지효과로 사업부별 보유 경쟁력이 극대화됨으로써 해외 선진업체와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0.1 지역전문가 제도 시행 “국제화의 첨병을 양성하다”
1990년 삼성은 지역전문가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지역전문가는 1년 동안 해외 현지에 파견되어 현지화·정보화·전문화 역량을 키우고 국제화 시대를 이끌 안목과 시야를 가진 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990.7 삼성 어린이집 개원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을 해결”
삼성의 어린이집 건립사업은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여성들에게 일할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기회의 평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 1989년부터 저소득층 가정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했습니다.

1992~ 2012 삼성 반도체, 21년 연속 1위 “인류의 문명을 바꾸는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불모지에서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오른 삼성 반도체. ’92년 D램을 시작으로 S램, 플레쉬, 시스템 LSI까지 새로운 신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92.1 타임스퀘어 광장 네온 점등 “세계 경제의 심장부에 삼성의 불을 밝히다”
1992년 1월, 세계경제의 중심지 뉴욕 타임스퀘어에 삼성 옥외 네온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삼성 네온 광고판은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삼성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 나갔습니다.

1993.3 신 CI 제정 “새로운 시대, 새로운 얼굴”
창립 55주년, 제2창업 5주년을 맞아 새로운 CI를 제정했습니다. 통일된 푸른색 타원형 워드마크는 세계인의 가슴속에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로서 자리 잡았습니다.

1993.6 프랑크푸르트 선언 “처자식 빼고 다 바꾸자”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은 눈앞에 닥친 세기말의 위기상황을 직시하면서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할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변화의 선두에 섰습니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일류를 향한 신경영 대장정을 시작하며 6월 7일을 ‘삼성이 새롭게 태어난 날’로 정의했습니다.

1993.7 대규모 여성인력 채용 “미래를 위한 여성 인력 활용”
1993년 삼성은 하반기 대졸사원 공채에서 여성 전문인력 500명을 선발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사 관행을 타파함으로써 우수한 여성인력을 선행적으로 확보·육성했고, 채용 후에는 주재원, 지역전문가 등 각종 기회를 보장해 여성 인력의 활동 영역을 크게 넓혔습니다.

1994.3 협력업체 지원제도 시행 “구매예술화 철학의 실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많은 회사가 양산조립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협력업체를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며 하청업체라는 말을 협력업체로 바꿨습니다. 신경영 선언 후 협력업체 지원은 자금 지원을 넘어 구체적인 기술 지원으로 발전했습니다.

1994.6 고객 신권리 선언 “고객 중시의 신경영 정신을 실천”
삼성전자는 신경영 선언 1주년이 되는 1994년 6월 고객 최우선 철학을 반영한 ‘고객新권리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신경영의 성과를 고객에게 환원하고, 내부적으로는 조직 구성원 모두가 질 위주 경영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었습니다.

1994.9 세계최초 256메가 개발 “반도체를 통해 ‘이기는 법’을 배우다”
삼성은 1992년 8월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한 데 이어 1994년 8월 다시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경쟁사보다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앞선 것이었습니다.

1994.10 삼성 의료원 개원 “의료 서비스 혁신 모델 창조”
삼성의료원은 기다리지 않는 병원, 보호자 없는 병원, 촌지 없는 병원 등 3무(無) 병원을 표방하며 실천해 나갔습니다. 삼성의료원의 첨단시설과 시스템, 환자 중심의 서비스는 국내 의료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으며 우리나라의 장례문화 개선에 앞장섰습니다.

1994.10 삼성사회봉사단 출범 “국내기업 최초로 사회공헌 전담조직 창단”
삼성은 신경영 정신의 하나로 강조해 온 인간미와 도덕성 회복의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자원봉사를 권장했으며,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그룹 차원의 시행을 위해 1994년 10월 19일 삼성사회봉사단을 발족시켰습니다. 이후 1995년부터 매년 ‘삼성 자원봉사 대축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995.3 휴대폰 화형식 “마음속 불량까지 모두 태우다”
품질혁신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불량제품 화형식은 휴대폰과 무선전화기 15만 대, 150억 원어치에 달하는 불량제품이 2,000여 명의 직원들이 보는 가운데 불태워졌습니다. 애니콜 신화의 중심에는 양 위주가 아닌 질 위주 경영이라는 신경영 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95~ LNG선, 드릴쉽, 세계 최초 쇄빙유조선 등 1위 질주 “고부가가치 선박 1위”
1994년 제3도크 준공으로 규모 면에서 세계 3대 조선소로 부상한 삼성중공업은 LNG선, 드릴쉽, 여객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섰습니다. 그 결과 이 분야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으며,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도크 생산성을 확보했습니다.

1995.7 열린인사제도 실시 “기회균등, 능력주의 인사”
1995년 7월, 삼성은 학력제한 철폐를 중심으로 한 열린 인사 개혁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열린 인사는 기회균등 인사, 능력주의 인사, 가능성을 열어주는 인사로 연공서열이나 각종 차별조항을 철폐하여 시대변화에 맞는 능력주의 인사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6.1 디자인 혁명의 해 선언 “21세기 최후의 승부처는 디자인”
1996년 이건희 회장은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 집결해 나가자”고 역설하며 그 해를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디자인 인력을 꾸준히 확충했고 1997년에는 자랑스런 삼성인상에 디자인 부문을 신설하였습니다.

1997.4 중소기업개발원 건축, 기증 “중소기업 인재양성을 위한 상생협력 실천”
중소기업 인재양성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개발원을 건립하고, 이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기증했습니다. 또한, 연수원을 원활히 운영할 기술과 노하우도 지원했습니다.

1997.5 올림픽 공식 파트너 선정 “삼성 브랜드 인지도의 제고”
1997년 5월, 삼성은 무선통신 분야에서 올림픽 공식 파트너가 되었고, 이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총 네 번의 하계올림픽과 세 번의 동계올림픽에 무선분야의 공식 후원사로 참가했습니다. 올림픽 공식 파트너 선정은 삼성 브랜드가 2000년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1 디지털경영 선언 “경영 전 부문을 디지털화하라”
인터넷 열풍과 IT 인프라 확산은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인류 역사상 제3의 변혁기인 정보혁명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21세기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삼성은 디지털 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서 추진해 나갔습니다.

2000.1 래미안 브랜드 론칭 “국내 최초 아파트의 브랜드화”
2000년 1월, 삼성물산은 미래[來], 아름다움[美], 편안함[安]의 「래미안」 아파트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래미안은 상품개발과 마케팅 개념을 접목한 국내 최초의 아파트 브랜드로 건설회사 이름과 지역명을 조합해 아파트 이름을 짓던 당시 주택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삼성물산은 업계를 리드해 나갔습니다.

2002.4 ‘이건희폰’ SGH-T100 출시 “삼성 최초의 텐밀리언 셀러 폰”
‘이건희폰’으로 더 잘 알려진 SGH-T100 모델에는 넓은 화면으로 가독성을 높이고 조약돌 느낌을 주는 이건희 회장의 아이디어가 담겼습니다. 이건희폰은 최초 1,000만 대가 팔린 히트상품이며 삼성 휴대폰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2004.10 리움미술관 개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활동”
2004년 10월 서울 한남동 남산 자락에 한국의 국보급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세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리움(Leeum) 이 탄생했습니다. 삼성의 수십 년 미술사업 역량이 집대성된 리움은 호암미술관, 로댕갤러리에 이어 생활 속에서 문화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됐습니다.

2005.4 첼시구단 스폰서 계약 “활발한 스포츠 마케팅 실시”
올림픽 스포츠 마케팅의 성과에 이어 스포츠 마케팅의 저변을 다른 종목으로 확대해 나가며 2005년 4월부터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첼시 구단의 공식 클럽 스폰서로 참여했습니다. 삼성 워드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첼시 구단의 경기는 전 유럽에 중계되었고 이는 유럽에서 삼성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6~2012 TV 사업 7년 연속 1위 “최고의 격전장에서 초격차를 실현하다”
2006년 와인잔을 형상화한 보르도 TV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삼성의 TV 사업은 사업 37년 만에 세계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이후 7년간 독주체제를 굳힌 TV 사업 1위는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2010.1 부르즈칼리파 완공 “세계 최고층의 기록을 다시 쓰다”
1997년 말레이시아에서 452m 높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준공하며 세계 최고층 빌딩 건축의 기록을 세웠던 삼성물산은 버즈두바이(Burj Dubai)를 통해 세계 최고 마천루의 역사를 새롭게 쓰며 2007년 세계 10대 건축물에 선정되었습니다.

2012~ 미래의 씨앗을 준비하다

2012 스마트폰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갤럭시 시리즈 “기어이 정상에 올라선 휴대폰”
삼성은 1988년 도시바 제품에 삼성 로고만 붙여 출발했던 휴대폰 사업을 스마트폰 열풍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2012년 스마트폰 판매 1위에 올라섰습니다. 미래 예측과 기술 축적으로 ‘갤럭시 시리즈’라는 스마트폰 신화를 만들어 냈고, 이제는 인류의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스마트 시대의 리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08 ~ 2012 포춘 ‘존경받는 기업’ 5년 연속 선정 “모두에게 존경받는 기업을 실현”
삼성은 국민의 기업,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임을 명심하고 사랑받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고객과 사회로부터 진정 어린 신뢰와 존경을 받는 기업이 되어야 하며 아울러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딩 컴퍼니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2012.9 인터브랜드社 발표, 브랜드가치 9위 “21세기는 브랜드의 시대다”
무형자산인 기업 브랜드 가치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삼성은 브랜드 경쟁력 제고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그 결실로 2012년 브랜드가치 9위에 올랐습니다. 이는 전년대비 7계단 상승한 순위로, 아시아 기업으로는 가장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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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리

    생일 축하해요 삼성~

    • http://blog.samsung.com 삼성이야기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Daniel

    벌써 75년이 됐군요. 이러니 저러니 말 많아도 역시 삼성입니다! 축하! 팟팅!

    • http://blog.samsung.com 삼성이야기

      응원 감사합니다. 향상 노력하는 삼성이 되겠습니다.

  • 금현덕

    우리 삼성맨들이 있는데 무슨걱정임
    이제 삼성은 발전할 일만 남았음

    • http://blog.samsung.com 삼성이야기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http://blog.daum.net/tjtjddjs 서성언

    삼성의 도전과 창조의 75년간 역사를 인포그래픽은^^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대한의 삼성이여 영원하라!!

    • http://blog.samsung.com 삼성이야기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 조정윤

    한국의 위상을 정립한 기업!

    영원한 꿈의 성장 기업!

    세계를 장악한 기업!

    역시 삼성입니다!

    • http://blog.samsung.com 삼성이야기

      댓글 감사합니다. 계속 응원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