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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앤유] 논어에서 배우는 이립(而立)과 불혹(不惑)의 지혜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흔히, 서른을 이립(而立), 사십 대를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하는데요.  
이립과 불혹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걸까요?
 
오늘도 흔들리고 있는 삼사십 대에게
논어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알려 드립니다!

※ 아래 글은 삼성앤유에 소개된 컨텐츠를 블로그용으로 수정한 글입니다.


고전사용설명서 I 이립과 불혹의 지혜

글 강신주(철학자), 일러스트 홍원표·황진영
이립과 불혹

설익지도 농익지도 않은, 딱 좋은 나이 삼사십 대. 하지만 현실 속 삼사십 대는 갖가지 갈등과 피로를 어깻죽지 가득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갑니다. 그래서일까요, 공자가 귀띔해준 ‘이립’과 ‘불혹’의 경지는 먼 나라 옛날 얘기 같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미래를 그려보건대 삼사십 대에 밑그림이 없다면 이후 삶도 백지처럼 막막할 뿐입니다. 불현듯 공자의 말씀이 죽비처럼 머리를 내리칩니다.

<논어(論語)>의 두 번째 편인 ‘위정(爲政)’을 보면 삼사십 대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구절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삼십이립(三十而立),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는 구절입니다. ‘삼십의 나이가 되어서는 설 수 있었고 사십의 나이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다’고 번역합니다. 삼십 대를 ‘이립(而立)’의 나이라고, 그리고 사십 대를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부를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지요.

그렇지만 공자(孔子)가 삼십 대가 되면 누구나 서게 되고, 사십 대가 되면 누구나 미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립이나 불혹은 막말로 똥줄이 빠지게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경지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다는 뜻을 가진 ‘립(立)’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미혹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불혹’이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가 말입니다.

나의 뿌리는 어디에서 얼마만큼 자랐는가

역대 수많은 학자가 ‘선다’의 의미를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직관적으로 인간이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나무를 심어 세우는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뿌리를 땅에 제대로 심지 않는다면 나무는 심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라면 심었어도 심었다고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뿌리가 튼튼하고 잎이 풍성한 나무와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

만약 제대로 뿌리를 내려 나무가 자신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잡는다면 이제 나무는 성장할 겁니다. 물론 성장은 두 방향으로 이뤄지겠지요. 한 방향은 땅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 아래에서 이뤄질 겁니다. 나무가 높고 크게 자라려면 나무의 뿌리는 더 커지고 더 강해져서 땅을 굳게 잡고 있어야만 합니다. 땅 아래 뿌리가 현실을 상징한다면 땅 위로 자라는 나무는 아마 미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확고한 현실 감각이 없다면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일 겁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어떻게 뿌리 약한 나무가 풍성한 가지와 잎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장 탁월한 이상주의자는 동시에 가장 탁월한 현실주의자일 수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질병을 고치는 의사를 생각해보세요. 질병에 대한 냉정한 진단으로 의사는 환자를 절망에 빠트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냉정한 만큼 의사는 어떤 식으로 치료하면 질병이 제거될지 전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현실적으로 진단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미래의 전망도 꿈꿀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바로 이것이 이립이 가진 의미입니다. 가장 탁월한 현실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낙관적인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클수록 시련도 커지는 섭리

그렇다면 불혹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먼저 ‘혹(惑)’이라는 글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자는 ‘혹시’라는 의구심을 뜻하는 ‘혹(或)’ 이라는 글자와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란 글자로 구성돼 있습니다. ‘혹시 내가 잘못된 곳에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더 좋은 다른 땅에 뿌리를 내렸다면 더 크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는 마음 상태가 바로 혹(惑)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삽십대와 사십대 일러스트

그렇다면 이런 미혹의 상태는 왜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는 옛사람의 말을 떠올려본다면 미혹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나무는 높고 크게 자랄수록 작은 나무였을 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겪게 됩니다. 매서운 폭풍우도 작열하는 태양빛도 감당해야 합니다. 커지고 풍성해질수록 나무는 자꾸 위축되고 그에 따라 고민도 많아집니다. 혹시 자신이 제대로 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예 높고 크게 자라지 않았다면 뿌리를 뽑을 것처럼 몰아치는 매서운 폭풍우를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나무는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더 커졌기 때문에 온갖 시련이 발생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확고한 현실 감각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수많은 오해와 질시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삼십 대에 세운 원칙과 그에 따른 삶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이런 시련은 우리가 그만큼 평범한 다른 사람이 넘볼 수 없는 높이와 규모로 자라났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십 대 나이에는 불혹의 마음으로 삼십 대에 세운 꿈과 이상을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삶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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