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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카드] 당신만의 추억 속 그 시절은?  삼성카드 직원들의 세대 공감 이야기

안녕하세요. 삼성이야기 에디터, Sam입니다.

여러분도 옛 추억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는 특별한 시절이 있으신가요?

삼성카드 블로그가 직원들의
‘그때 그 시절 추억이야기’에 대해 들어 봤는데요.
직원들이 말하는 ’1994년대’부터 ’2011년대’까지~ 함께 들어볼까요?
(http://blog.samsungcard.com/1144)

작년, 많은 사람에게 이슈가 되었던 드라마가 있죠? 그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는데요. 떠나보낸 2012년을 생각해보면 벌써 옛날의 추억이 된 것 같습니다:D 이렇게 새로운 출발을 할 때, 가끔은 옛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으신가요? 그래서 오늘은 삼성카드 직원들에게 ‘그때 그 시절’에 대해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D 과연 삼성카드 직원들 자신들의 마음속에 어떤 추억을 가졌는지 함께 보실까요?^^ 


A 주임의 추억, 2011년대

1987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하계수련대회는 매년 그룹 신입사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삼성인으로서의 긍지와 패기를 나누는 화합과 소통의 축제입니다. 신입사원들의 끼를 확인할 수 있는 ‘블루 콘서트’에서부터 응원전과 계열사별 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집니다.


2011년, 저는 운 좋게도 그룹 공연팀으로 블루 콘서트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잖이 주눅이 들었습니다. 뛰어난 동기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우리 팀은 각종 장르를 섞어 공연하는 ‘퓨전’ 팀! 전례가 없다 보니 기획 단계부터 난항이 거듭되었습니다. 가야금, 비트박스, 첼로, 기타, 마술과 랩을 하나의 멋진 퍼포먼스로 구성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고, 척척 준비해 나가는 다른 팀을 보며 너무나 초조했죠.

연습실과 녹음실을 오가며 다시 작업하기를 수차례… 새벽까지 연습과 리허설을 계속하며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행사장소로 이동하여 드레스 리허설을 하면서, 힘들게 준비한 만큼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은 더욱 간절했습니다.

끝까지 모든 노력을 다 쏟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실제 무대에서는 더없이 행복하게 공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감히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대상! 정말 꿈만 같았어요. 온 마음을 다해 준비했던 시간과 무대에 오를 때의 설렘, 멋지게 마친 뒤의 그 행복했던 기분까지 앞으로 두고두고 제게 힘과 용기를 줄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룹 오디션을 보도록 적극 권해 주셨던 선배님, 그리고 응원해 주었던 동기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B 차장의 추억, 1997년대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카드에 입사하며 사회에 데뷔한 1997년! 15년이 지났지만 저는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울을 보면 그런 생각은 깨끗이 잊게되죠. 실크넥타이 같던 피부가 지금은 거북이 등껍질같이 거칠어져 있어 새삼 많은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부뿐인가요. 출퇴근 시간도 변했습니다. 입사할 당시만 해도 신경영의 일환으로 7~4제(아침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가 철저히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벌건 대낮부터 술 마시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이 어학 공부나 개인 취미생활을 만끽했죠. 그런 업무 사이클은 이듬해 IMF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어졌지만, 시행의 배경이 된 회장님의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삼성인의 DNA로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 변화를 보여 주는 아이템은 휴대전화입니다. 지금이야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여 초등학생까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귀했습니다. 워낙 휴대전화가 고가여서 저는 시티폰을 이용했는데요. 이 폰은 공중전화 주변에서만 통화가 가능하여 권역을 벗어나면 끊깁니다. 더욱이 달리는 차에서는 불통이라 운전 중 전화가 오면 시속 10km로 서행해야 했고, 심지어 걸어가다가 예쁜 여자를 보고 고개를 돌리면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산간벽지까지 휴대전화 전파가 안 닿는 곳이 없어 업무수행에 이모저모 편리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사무실 밖에서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때로는 그때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여유가 띄엄띄엄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C 과장의 추억, 1994년대


 
인생을 살면서 매해 소중하지 않은 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1994년은 저희 가족에게 너무나도 아픈 해였습니다.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버지를 잃었다는 충격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는 대학교 졸업 후 무조건 취직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상당했어요. 그렇게 저는 삼성카드에 입사했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시고자 식당을 운영하시게 되었죠. 가정만 돌보시다 식당을 운영하시니 얼마나 고되셨을지요. 그렇게 어머니는 저를 포함한 3명의 자녀를 위해 오랜 세월을 세상 풍파와 싸우셨습니다. 덕분에 형과 저 그리고 막내 동생까지 힘들지 않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세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킨 후 어머니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셨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시며 말이죠. 그뿐인가요. 내년이면 서예작가라는 꿈도 이루십니다. 어머니를 보며 우리 형제와 손자 손녀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기보다는 가정과 생활 주변에서 주어지는 끊임없는 자극들이 큰 방향을 이루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논어 구절에 삼인지행(三人之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본받을 이가 반드시 있다는 말이에요. 인생을 살면서 부모님을 포함한 여러 선·후배가 그때그때 충고와 가르침을 줬습니다. 아둔한 제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도 잦지만, 언제나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인연들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D 사원의 추억, 2005년대


2005년은 제게 너무나도 특별한 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귀중한 생명이 부족한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에요. 2005년 4월 21일. 제게 진정한 행복을 알게 해주고 엄마라는 타이틀을 안겨 준 아들 시언이를 만난 날입니다. 시언이를 만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시언이에 앞서 하늘로 먼저 보낸 사랑이에게 죄스럽고 미안했습니다. 시언이는 사랑이를 허망하게 보내고 슬픔에 잠겨 있던 제게 찾아온 아이입니다.


뱃속에 생긴 시언이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듯 심한 입덧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무려 9개월간 계속된 입덧.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일과가 되풀이되었습니다.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다시는 임신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뿐인가요. 되풀이되는 하혈로 병원에 입원한 것도 여러 번입니다. 덕분에 입·퇴원 절차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죠.

시언이가 태어난 후 제 안에 숨겨져 있던 여러 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걷다 좋은 풍경에 감동하고, 동요를 부르며 동심으로 되돌아가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동안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날 수 있었어요. 시언이의 태명은 소망이. 그 이름처럼 항상 소망을 이루게 해준 보물 같은 우리 아들. 부족한 제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나에게 와준 아들 시언이에게 “아들아, 너무 고맙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떠셨나요? 삼성카드 직원들의 그 시절 이야기. 여러분도 하나쯤 가지고 있는 추억들은 아니셨는지요^^ 2013년에도 있을 다양한 일들 속에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모두의 추억이 될 수 있는 일들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D 삼성카드 역시 여러분의 지금이 훗날 멋진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생활 곳곳에서 뛰며 노력할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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