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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취임 25년] ② IT 강국의 초석을 마련하다


“삼성은 Innovator다. 모두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삼성은 내놓는다.”

-윌슨 로스만(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2004년 1월)


반도체, 휴대폰, TV 등 IT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며
수출 강국 코리아, IT 강국 코리아를 이룬 삼성의 신화.
한발 앞선 도전으로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창조해 온 삼성은
국내 정상을 넘어 당당히 세계 일류 기업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2]  IT 강국의 초석을 마련하다
2004년 삼성 반도체 30년을 맞아 기념서명을 하는 이건희 회장


반도체 신화의 서막

1974년,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일본보다 20, 30년 뒤처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 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지금이야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 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 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자본, 기술, 시장’이 없기 때문에
삼성의 반도체는 안 된다는 3불가론의 공격이 계속됐습니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반도체 미래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던 이건희 회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 나섰고 스스로 자료를 분석해 나갔습니다.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고
일본이 주춤거리는 사이 과감한 투자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 당시 세계 반도체 업계는 새로운 기술적 난관에 부딪혀 있던 상태여서
삼성은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기회를 맞았습니다.

‘4메가 D램의 엄청나게 늘어난 용량을 어떻게 칩에 담을 것인가.’

방법은 두 가지, ‘스택이냐, 트렌치냐’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2]  IT 강국의 초석을 마련하다

그때까지 해외 선진 기업들은 아래로 파고 내려가는 트렌치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이건희 회장은 남다른 선택을 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

결과는 적중했습니다. 당시 선진 기업들이 고집했던 트렌치 방식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기술을 수용해 나가지 못했습니다.

“트렌치로 했으면 지금쯤 반도체는 망했고, 그룹까지도 흔들렸을 것이다.”


과감한 두 번째 결단이 이어졌습니다.

“모두가 하는 6인치로는 일본을 뛰어넘을 수 없다.”
“삼성은 8인치에 승부를 건다.”


1993년 기존 6인치 웨이퍼가 주류를 이루던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은 8인치 생산을 결단했고,
그렇게 하여 늘어난 생산량으로 일본 등 선진 업체를 넘어서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랐습니다.


디지털 혁신 DNA, 반도체에서 스마트폰으로

반도체의 성공에 이어, 애니콜 신화가 뒤를 이어받았습니다.
세기말적 위기에 대비해 경영의 중심을 양에서 질로 바꾸자는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습니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1984년 모토로라 카폰이 처음 등장한 이후,
국내 휴대폰 시장은 모토로라가 석권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으로서는 철옹성 같던 모토로라의 위력을 뛰어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마침내 1994년 10월 삼성은 애니콜 브랜드의 첫 제품인 SH-770을 출시했고,
시장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그럴수록 더욱 기본에 충실할 것을 강조합니다.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 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회장의 품질 경영에 대한 신념은 기술 개발에 불을 당기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통화하고, 던지고, 밟고, 부수고, 떨어뜨리는 가혹한 실험을 시작으로
끈질긴 노력을 계속한 끝에 삼성 휴대폰의 기술 차별화 전략은 완성되었습니다.

1995년 8월 마침내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삼성의 무한한 디지털 시장 개척

이건희 회장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듭니다.

“새 천 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있게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은 인재와 기술을 모두 모아 사활을 걸고 TV를 만들라고 주문합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출발이 늦었지만,
디지털 시대는 출발선이 같아 우리도 1등을 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30년간 세계 TV 무대를 제패하고 있던 소니와 파나소닉.
그러나 브라운관에서 디지털 TV로 전환되면서 시장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삼성은 앞선 디지털 기술력과 뛰어난 디자인으로 TV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보르도 TV를 내놓으며 단숨에 선두권으로 치고 나왔고, 시장의 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라도 사고 싶은 제품, 거실 벽면을 하나의 예술로 바꾼 제품,
삼성의 보르도 TV는 월드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최근의 스마트TV에 이르기까지 삼성 TV는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삼성 보르도 TV(2006년)                  삼성 스마트TV9시리즈 (2012년)


IT 강국의 초석을 마련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비웃을 때 삼성을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로 만든 이건희 회장!!
세계 시장에서 막강 파워를 행사하고 있던 선진 기업에 과감히 도전하고
맹추격하며 이루어 낸 삼성 휴대폰과 TV의 역전 드라마!!

그것은 지금의 IT 강국 대한민국을 있게 한 초석이었습니다.


내일 11월 21일에는
[이건희 회장 취임 25년] ③ “글로벌 영토확장” 이 게재됩니다.



Q. 기존 6인치 웨이퍼가 주류를 이루던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이 8인치 생산을 결단한 해는 언제일까요?

▶ 정답
: 1993년

: 상기 이벤트는 종료되었으며, 당첨자 발표는 blog.samsung.com/3016 에서 확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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